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의 창룡문 인근 성곽 비탈길을 따라 내려가면 기와지붕이 늘어선 한옥 단지가 나온다. 수원시가 체류형 관광을 목표로 지난달 정식 개관한 공공 한옥 숙소 '남수헌'이다.

남수헌은 총 12개의 독채로 이뤄졌으며 객실 규모는 1인실부터 최대 8인실까지 다양하다. 골목길 양옆으로 배치된 객실은 전통 경기민가 형태인 'ㄷ'자와 'ㅁ'자 구조로 지어졌다. 강원도산 육송에 옻칠을 하는 등 전통 방식을 따르면서도 천장형 에어컨, 최신 창호 시스템, 저상 침대, 야외 자쿠지 6곳 등 현대식 편의시설을 갖춰 한옥 특유의 불편함을 줄인 점이 특징이다.

성곽 인근 도심에 위치해 있지만 차경(借景·주변 경관을 끌어들이는 기법) 구조물이 외부 시야와 도로 소음을 차단해 내부는 고요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입구를 지나면 인공 연못이 조성된 마당이 나타난다. 마당을 사이에 두고 늘어선 객실들은 서로 시선이 겹치지 않도록 배치돼 독채임에도 단지 전체가 하나의 마을처럼 느껴진다.

수원시는 화성을 스쳐 가는 관광지에서 머무는 관광지로 바꾸기 위해 2016년부터 이 사업을 추진해왔다. 문화재 발굴 조사와 토지 매입, 보상 절차를 거쳐 2020년 설계에 들어갔고 2023년 4월 공사를 시작해 올해 4월 준공했다. 8년에 걸쳐 완공된 남수헌에는 국비와 도비, 시비를 합쳐 241억 원이 투입됐으며 연면적은 2천644㎡ 규모다.

문화재청 통계에 따르면 전국 고택·한옥 체험업 등록 시설은 매년 꾸준히 늘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사업 시행자로 나서 대규모 예산을 투입한 사례는 드물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옥 건축 전문가는 "공공이 부지 매입부터 문화재 조사, 설계, 시공까지 전 과정을 주도한 것은 흔치 않은 방식"이라며 "초기 투자 비용은 크지만 지역 경관 보존과 관광 자원화를 동시에 노린 시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인테리어와 운영은 국내 한옥 숙소 브랜드를 이끄는 대표가 맡았다. 수원시로부터 5년간 사용·수익 허가를 받은 민간 위탁 방식으로 운영되며, 운영사는 시에 연간 약 1억 4천여만 원의 사용료를 낸다. 운영을 맡은 대표는 "남수헌은 인공지능 시대에 AI가 대체할 수 없는 웰니스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라며 "몰입, 멈춤, 치유, 휴식이 그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런 사업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만큼 공공 영역에서의 한옥 숙박 성공모델로 만들어가겠다"고 덧붙였다.

남수헌은 단순히 잠자리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숙소 안에서 비움을 체험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 다례와 명상 시설이 숙소와 라이브러리, 야외 공간 등 여러 곳에 마련돼 있다. 숙소와 가까운 거리에 5.7㎞ 길이의 성곽 산책로가 있어 문화유산을 감상하며 산책과 조깅도 즐길 수 있다.

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남수헌을 다녀간 이모 씨(41)는 "아이들과 성곽길을 걷고 돌아와 마당에서 차를 마시니 여행이 아니라 잠시 다른 시대에 다녀온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함께 온 김모 씨(38)는 "한옥이라 불편할까 걱정했는데 냉난방이 잘 돼 있어 오히려 호텔보다 편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안전과 안락한 휴식을 우선한 운영 방침에 따라 취사는 어렵다. 평일 기준 하루 숙박비는 29만∼53만 원이며 2인실 1개 객실은 20만 원이다. 수원시민에게는 매월 객실의 10%에 한해 이용료를 30% 할인해준다.

수원시 화성사업소 공공한옥팀장은 "수원천을 중심으로 서편은 행리단길로 관광객 유입이 많지만 남수헌이 있는 동편은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다"며 "남수헌 공사가 시작된 이후 주변에 여러 시설이 들어서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숙소 인근에는 카페와 소규모 공방 등이 새로 문을 열며 골목 풍경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정재은